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김누리, 2020

Young
5 min readMar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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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es24

스웨덴 교환학생 갔을 때의 경험과 비교해가며 을 읽어보았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한국 사회에 대해 느꼈던 구린 감정의 원인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저자는 독일 유학 시절,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많이 다름을 느꼈다고 한다. 선생님과 교과서의 말이 곧 정답이기 때문에 달달 외우고 그대로 뱉어내면 고득점은 문제없던 파쇼적인 교육을 받다가, 비판적으로 사고해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입장에 처했으니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나도 교환학생 때 재밌을 거 같아서 들은 스웨덴 영화사, 그리고 스웨덴의 사회 복지 수업을 들었다가 에세이 수업에서 아주 물을 먹었기 때문에 어떤 기분인지 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쁘게 정리하기만 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자료를 찾아보고 내 주장은 어느 지점에서 펼쳐야 하는지 너무 막막했다. 인용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따옴표 써서 인용하면 표절에는 안 걸리겠지? 교양 수업 말고도 기숙사에서 SNS에 대한 토론회를 한다기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평소에 SNS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별로 안 하기도 했고 여러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어로 말을 해야 해서 어리바리했던 기억이 난다. 이 두 번의 경험을 하고 나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대로 살면 앞으로 나는 X 같은 삶을 살겠구나!

스웨덴에서 돌아온 직후 한국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광화문 일대에서 몇 번 진행되었다. 몇 번은 참석하기도 하고, 몇 번은 옆에서 그냥 지켜봤다. 광장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잘 기능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나아진 것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지적한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의 괴리”이다. 광장에서 아무리 구호를 외치고 하나 되는 듯함 감정을 느껴도 일상에까지 그 감성을 가져오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변화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민주화를 좀 더 세분화하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이렇게 네 분야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진단한다. 진단 결과는 정치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상태다. 저자는 역사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1968년 5월에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시작된다.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말 파격적인 구호를 내건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 물결은 한국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박정희 정권 아래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 유지를 위해 베트남전 파병을 기점으로 사회의 병영화와 군사문화의 만연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파시스트 훈육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었고, 슬프게도 한국인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Young girl holding a flower, Washington, 1967 | Marc Riboud

68혁명 당시 ‘코뮌 운동’이라는 성 해방 운동도 벌어졌다. 이들은 일부일처제(monogamy)를 부정했다. 독일 대학교 기숙사에는 남/여 구분이 없고 모두에게 방을 주고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형태이다. 내가 지냈던 스웨덴 대학교의 기숙사도 이와 비슷한 형태였다. 이를 복도(corridor)형 기숙사라고 했는데, 널리 쓰이는 용어인지는 모르겠다. 그 전에 한국 대학 기숙사에서 거의 중세 시대 수도원 급의 남녀구별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이렇게 동거도 자유로운 곳에 오니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처음에는 매우 신기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면 기숙사 친구들에게 내가 어디 수녀원에서 살다가 금욕적인 생활에 지쳐 탈출한 사람 같은 인상을 줄 거 같아서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중적 성도덕이 판치는 사회에 살며 성에 대해 억압을 받으면 깊은 죄의식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자아가 약해지며 권력에 굴종하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 자라난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 요즘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언어. 그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가?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평소에 궁금한 점을 이 책을 통해 조금 풀었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의 가장 우파 정당이 한국의 가장 좌파 정당보다 더 좌파”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 지형은 매우 우경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보수/진보’의 세상이 아니라 ‘수구/보수의 과두제(oligarchy)’ 세상이다. 과두제는 정부 형태 중 하나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소수의 사람이 부, 교육, 회사, 종교, 정치, 혹은 군사적인 통제로 나라를 다스리는 형태”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이 대표적인 과두정의 국가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자발적 미국화(Americanization)를 열심이며, 이를 “영혼의 미국화”라고 표현한다. 높은 사립대학 비율,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두 보수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는 정치 지형, 그로 인해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없으니 발생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높은 의존도. 유럽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은 표준이 아니라 예외 케이스이다. 이런 한국과의 유사성, 그리고 옆집에서 볼 때의 예외성 때문에 미국 역시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할 나라이다.

책을 쭉 읽어보며 내가 꿈꾸는 사회상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이미 한 차례 이 사회의 비관적인 모습은 충분히 들여다보았으니 이제 다른 우물을 들여다보고 싶다. (한창 우울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는 싫은 것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싫음을 피력해도 그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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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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