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감각 기르기 (요네하라 마리, 2013)

교육에 대하여

Young
8 min readMar 15, 2021

어렸을 때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다 일본으로 귀국하여 러시아어-일본어 동시통역사로 활동한 요네하라 마리의 대담집을 읽었다. 여러 지인과 통역과 국제 정세, 일본 사회, 남자 등 이런저런 재미있는 주제로 대화를 펼치는데 나도 거기 빠져들어 읽다 보니 금세 책이 끝나 있었다.

출처

마리는 소비에트 학교에서 배운 교육과 일본의 교육을 자주 비교하는데, 내가 받은 한국의 교육 사정과 비교해서 읽어봤다. 한국 수업은 일단 이 단원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 부여에 서툴다. 모든 것은 이미 사지선다 혹은 단답형으로 평가하기 쉽도록 철저하게 교육자의 편의를 위해 해체되어 있고 배우는 쪽은 그것을 일정 시간 내에 머릿속에 담고 있다가 폐기한다. 그러다 보니 동기 부여 없이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은 수면의 시간으로 빠져들기에 십상이다. 그 와중에 수업 시간을 다 채우는 선생님들이 신기했다.

마리: 모스크바대학교 경제학부장인 비한스키 씨가 예리한 지적을 한 적이 있어요. 전문 분야에 한정된 얘기지만, “일본의 학자는 학자가 아니다”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해박하지만, 지식을 나열할 따름이니까. 학자의 본분은 지식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서 현 세상에서의 혼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인데, 나열만으로는 더욱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제 경험상 공감이 가는 말이었어요. 일본 학자들의 발언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연관성, 긴밀성이 약해요. 그래서 기억하기가 힘들어 통역하기가 까다롭죠. 객관성을 나열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요? (p14, ‘논리의 귀, 나열의 눈’ 중)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배울 내용은 다 정해져 있고, 교과서 내용은 몇 번 읽어보면 시험 대비하기 충분하니 그 시간에는 부족한 잠을 채우면 된다. 국어 시간은 지문을 읽고 이미 해석이 다 된 내용을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펜 색깔은 빨강, 파랑, 검정 이렇게 삼색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설령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했더라도 상관없다. 집에 가서 읽으면 되니까. 배운 내용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거나 글로 써야 하는 시간은 없으니까 간단했다. 문과 과목은 대충 다 그랬다. 나는 다행히 가만히 앉아서, 혹은 미동 없이 누워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고모리 (문학평론가, 도쿄대 교수): 일본에서는 요즘 종합적 학습을 강요하고 있는데, 일본의, 특히 전후의 교과서를 보면 국어에 나오는 문학적인 언어와, 사회 과목이나 이과 과목의 설명적인 언어가 각기 다른 언어인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야 아이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지. (p42, ‘역사 속에서 언어 감각 기르기’ 중)

마리: 수학이든 물리든 결국 언어를 통해 이해하는 거니까, 언어의 달인으로 만들면 그 후에 다양한 학문을 해나가기 위한 기초 체력을 갖추게 된다는 생각이지. 그런 의미에서는 언어에 대한 신뢰가 두텁고, 언어의 힘이라는 것에 무척 자각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 (p42, ‘역사 속에서 언어 감각 기르기’ 중)

수학 시간은 더 의미가 없었다. 수학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 중 하나는 “개념이 중요하다” 인 데, 그 단언을 문단으로 발전시켜서 좀 더 자세하게 그것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왜 중요한지 예시라도 들어주면 좋겠건만. 기껏 발전시킨 내용은 “여하튼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새하얀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교과서의 개념을 다 나열해 보라. 교과서를 보지 않고 써봐라. 그러다 막히면 다시 보고, 다시 써보고 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하는 “개념”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그냥 보기 좋고 이쁘게 정리된 “공식”을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랬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재밌게 설명해 주셨겠지. 이쁘게 정리된 공식 박스에 형광펜으로 별표 그려놓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수학의 긴 역사는 그렇게 무시되고 수학 포기자는 늘어난다. 모든 공식에는 그것이 나오기까지의 역사가 있는데. 나는 그래서 오히려 도서관에 가서 수학 관련 책을 읽는 것이 더 재밌었다. 아니면 인터넷 강의 선생님 중에 직관력이 엄청 좋아 보이는 분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 강의 듣는 것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 풀이가 엄청 간단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숙취 해소 방법이 수학 문제 푸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특이해서 좋았다.

오히려 방과 후에 돈 내고 배우는 인터넷 강의 선생님들, 소위 말하는 대치동 1타 강사들의 수업이 더 재밌었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학생(혹은 학생 부모님)의 돈을 받고 강의를 하고 점수를 올려 자기도 돈 벌어야 한다는 동기라도 있으니 강의며 교재가 충실했다. 말도 참 잘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을 단편적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사이를 실로 잘 꿰매어 기억에 잘 남도록. 한 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강의를 잘 하지 않으면 학생이 모이지 않을 테고, 돈을 벌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당할 테니까. 평생직장과 칼퇴근이 보장된다는 직업이라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업무 수행 능력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자기 철학 없이 그런 것만 쫓는 사람들이 선생님이 되면 사회가 이렇게 되는구나. 선생의 자질을 평가할 때, 높은 도덕성과 윤리적 자질보다는(물론 평균 이하면 곤란하지만) 맡은 과목을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가 중심에 놓이면 좋겠다. 그러면 평가 기준도 싹 다 바뀌어야 한다.

마리: …(전략)… 일본에 돌아오니 갈기갈기 해체되고 해부된 채 부분적인 것만 테스트를 당하는 것 같아 불쾌했어. 체코에 가서 말이 통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불쾌했어. …(중략)… 진학해서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시험이 대부분 OX식과 사지선다형이라는 점이었어. 소비에트 학교에서는 구두시험이나 리포트 방식이었잖아. …(중략)…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선생님에게 따졌어. (웃음) 예를 들어 역사의 경우 소비에트 학교에서라면 “인더스 강이 인도의 농업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혹은 “인도의 자연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 같은 문제가 나와, 책을 읽거나 어른에게 묻거나 스스로 어떻게든 조사해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서 평가를 받잖아. 암기하더라도 전체적인 문맥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토막 내고 잘라내버리면 무의미하다고 하면서, 이런 식의 공부 방법도 평가 방법도 잘못된 거라고 항의했지. 그랬더니 선생님이 “마리야, 한 반에 50명이나 있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할 수가 없단다. 게다가 그런 방식으로는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해”라고 하셨지. 하지만 어차피 객관적인 평가는 불가능한 법이니까, 그저 단순히 평가하는 사람의 책임 회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일본 사회에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p45, ‘역사 속에서 언어 감각 기르기’ 중)

어지간히 이런 사실이 싫었나 보다.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2013년 스웨덴 기숙사 방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느낀점. “왜 저 아이들은 저렇게 자기 생각을 다 말하고 사는데 나는 내 의견도 없이 얄팍하게 살아왔을까? 나는 지금까지 친구들 만나면 무슨 이야기하고 산 거지? 학교에서는 왜 그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혹시 나이 어린 것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면 맞대응하기 피곤해서 그런 건가? 눈치, 모멸감, 경쟁, 질문이 없는 사회. 다 전부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왜 영어 교육은 읽기/듣기만 알려주고 말하기는 안 알려줄까? 스웨덴 아이들은 말하기부터 배운다는데 왜 순서가 거꾸로지? 국민들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 통제하기 귀찮아져서 그런가? 그런 사교육을 받을 만한 자본이 없는 사람은 그냥 그런 삶을 살라는 건가? 그편이 부리기 쉬우니까.” 어떻게 하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교육을 내가 받아 보면 나아질까? 아니면 미래에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 이런 교육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면 될까? 이런 상처가 없는 사람들,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다. 요즘의 교육은 좀 더 나아졌기를 바란다. 잘 몰라서 내가 받은 것이 전부인 줄 아는 우물 안의 개구리이기 때문에 오해하고 있기를 바란다.

고모리: 나는 입시제도에 적응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중학생 때는 좋은 점수를 받는 기술에 매달렸어. 마음속으로는 패배감을 느꼈지만, 그 이후로 ‘열등감’에 친숙해지고 말았지. 통일된 기준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제까지 점수를 따지 못했던 내 감정이 ‘열등감’이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지. (p47, ‘역사 속에서 언어 감각 기르기’ 중)

논술형 교육이 한국 공교육에도 깊게 자리 잡았으면 한다. 일본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2015년부터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도입하여 시행 중이라고 한다. 한국도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에서 도입하고 있는거 같아 보이는데 관련 기사를 구글링하다가 아래와 같은 조희연 교육감 인터뷰를 발견했다.

…(전략)… IB를 도입할 경우 학교 당 1000만원을 넘는 로열티(연회비)를 스위스 IBO에 지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조 교육감은 “IB교육과정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개발하고 이에 맞는 대입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앞으로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 본문)

I strongly doubted that the Korean public education system is also established based on cost-effectiveness. It reminds me of the time when the government imported the COVID-19 vaccine. Can you please prioritize other valuable things, not only focusing on the ‘cost,’ which seems to only concern short-term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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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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